2018년 5월 27일 작성
덕후가 최애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건 애정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
덕질을 하려면 어느 정도 최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.
본래 덕질 초기에 덕후는 최애한테 잘 맞지도 않는 기믹을 씌우고 그걸 좋아하기 마련이지만,
어쨌든 그 기믹조차도 덕후들이 알아낸 최애의 사소한 파편에 뿌리를 둔다.
내가 걸스피릿을 보게 된 이유를 좋게 말하면 '현승희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'였다.
나쁘게 말하면 '중간에 잠깐 쉬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덕질 반 년 차인데 난 쟤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서'고.
'승희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는 게 보이는데, 그 이유에 대한 감을 전혀 잡지 못해서'가
가장 구체적인 동시에 핵심은 빼버린 설명이 아닐까 싶다.
나는 덕질하는 사람들한테 속으로 종종 '나는 널 전혀 모른다'는 말을 한다. 이게 방어적인 기제에서 온다는 것도 안다.
내 입장에서 무지를 시인하는 건 편한 선택이며, 최애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합리화도 가능하다.
다만 내가 왜 그 말을 지속적으로 했는지 최근에 알았는데, 그 이유를 바라보는 일 자체가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.
승희에 대해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될거라면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았다.
대중에게 보여주는 표면적인 모습 만큼은 숙지하여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빈도를 줄일 필요를 느꼈다.
거창하게 얘기했지만, 그냥 최애를 모르니까 좀 아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분량 많아보이는 프로에 손을 댄 거다.
걸스피릿이라는 프로 자체는 재밌게 봤다. 걸그룹 잡덕 출신한테 걸그룹 멤버가 12명이나 나오는 프로는 완벽 그 자체다.
다만 나는 승부욕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좋은데, 대중이 이걸 받아들여줄까, 라는 걱정은 조금 했던 게 사실이다.
승희에 대해 잘 알고싶다는 소기의 목적은 조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. 약간 더 미궁에 빠진 느낌이다.
쉬운 길인 줄 알았는데, 아직 내가 한참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느낌.
일은 일, 사생활은 사생활. 그것이 아이돌의 굴레라며 외치고 편하게 살고 싶지만
최소한 편지 한 장 쓸 때 헛소리는 하지 않는 덕후가 되는 것이 승희가 우리한테 보여주는 모습에 대한 답이고 예의다.
그리고 그 사실을 무시하기가 힘들다.
덕질 3.5년 차인데도 나는 아직 쟤네들 잘 모르겠다.
근데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알던 사람도 어느 순간 잘 알던 사람도 아예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.
그래서 포기..한 건 아니고 현생이 좀 많이 바빠서 포기했음. 얘들아 미안하다!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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